
영화 어쩔수가없다 속 해고 이후 중년 남성의 붕괴와 본성의 충돌
어쩔수가없다는 한 중년 가장의 해고 이후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를 동시에 파헤치는 작품입니다. 25년간 한 직장에 몸담았던 유만수는 하루아침에 해고됩니다. 문제는 실직 그 자체보다, 이후의 태도입니다. 그는 두려움과 자존심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집 안에 틀어박힙니다. 암막 커튼을 치고 술에 의존하며 " 어쩔 수가 없다 " 는 말을 반복합니다.
이 영화는 만수의 이중적 모습을 강조합니다. 제지업에 종사하며 나무를 베는 인물이 취미로는 분재를 기릅니다. 분재는 본능을 억압한 나무입니다. 인간 역시 사회 규범 속에서 본능을 억누르며 살아갑니다. 만수는 손바닥에 해야 할 말을 적어두며 스스로를 통제하려 합니다. 그러나 범죄 이후 비어 있는 손바닥은 더 이상 도덕을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입니다.
초반에는 자연의 소리가 들리지만, 점점 소리가 사라집니다. 귀마개는 상징적입니다. 그는 타인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자신의 욕망에만 집중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해고를 개인의 불행이 아닌 구조적 압박으로 확장합니다. 기술 발전과 AI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 만수는 시대에 밀려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하는 방식은 순응이 아니라 폭발입니다.
이미리와 주변 인물들," 어쩔 수 없다 " 의 복합 심리
이미리를 순수 악으로 해석하는 시선도 존재하지만, 저는 그렇게 단순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실직 자체보다 태도를 문제 삼습니다.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만수에게 분노합니다. 이는 단순한 냉혹함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는 인물 대부분을 " 어쩔 수 없다 " 라는 문장 안에 가둡니다. 만수는 50대에 다른 일을 시작하기 두렵다는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경쟁자를 제거하는 선택 역시 "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 " 는 합리화로 이어집니다. 이미리는 외도라는 선택을 하면서도 완전히 떠나지 못합니다. 살아온 정과 현실적 계산이 뒤섞입니다.
같은 업계 사람임을 눈치채는 인물의 심리, 남편의 살인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아내의 심리 역시 단순히 도덕으로 재단할 수 없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이라 믿는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이면서 동시에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집니다.
딸과 아들의 변화 역시 중요합니다. 딸은 예술을 통해 본성을 승화시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첼로는 억압된 감정의 해방 장치입니다. 아들은 점점 아버지를 닮아갑니다. 유전과 환경의 문제를 동시에 던집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자유 의지로 선택하고, 어디까지 타고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살인과 자유 의지, 대 AI 시대 은유 총평
만수는 처음 두 번의 살인을 사고처럼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은 계산된 자유 의지입니다. 여기서 영화의 제목은 아이러니가 됩니다. 정말 어쩔 수 없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그는 선택했습니다. " 어쩔 수 없다 " 는 말은 책임을 회피하는 자기 위안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블랙코미디 형식을 취하지만 웃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섬뜩합니다. 우리 역시 시대 변화 속에서 언제든 만수와 같은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와 기술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현실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연기 역시 강렬합니다. 이병헌의 유만수는 초반의 무기력에서 후반의 냉혹함까지 설득력 있게 이어집니다. 염혜란의 감정 폭발 장면은 캐릭터를 단번에 정리합니다. 박희순, 이성민, 차승원 등 주변 인물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무게를 더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범죄극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자유 의지를 묻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불안,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변명, 그리고 결국은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편리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묻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었는가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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